ONE 패러디 #1

100원~빛바랜 동전에

글 쓰신신 분(번역 아님): 하이텔 허혁님 (CRUCIAN)

"이봐 코우헤이"

나가모리와 루미와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식곤증에 빠져 단잠을 자는 중에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스미이가 부른 건가? 졸려서 귀찮긴 하지만
책상에 엎어져 잠만 자는 것도 따분하기만 해서 입가에 흐른 침을 닦고
눈을 부비면서 일어났다.

"으음, 스미이 너구나. 무슨 일이냐?"

"아 너 오늘 학교 끝나고 한가하지?"

"이몸께서는 늘 한가하신 몸이지."

스미이 녀석의 얘기를 대충 들어보니 수업 끝나고 루미와 함께 게임센터에
가보자는 얘기였다. PC게임 업계에서 <스타 드래프트>라는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겜으로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는 불리자드(Bull Lizard)에서
스타드래프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외전게임인 <스타 & 드래군스>라는
RPG성 강한 횡스크롤액션슈팅겜을 아케이드용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호오, 이거 참 잼있겠는걸. 이왕이면 4인용까지 가능하니까 한명 더 찾아
보는 게 어때?"

"아 나가모리한테 물어보는 거 어떨까?"

나가모리가 과연 이런 게임 좋아할까 모르겠다. 사토무라상이야 게임보다
붕어빵과 와플을 더 좋아하니 관심이 없을 게 분명하고 미사키 선배와 미
오는 요새 연극 준비에 바뻐서 얼굴보기조차 힘들었다. 그러고보니 미사키
선배는 눈이 어두워서 시간이 있어도 게임할 생각이 없겠다. 아, 그러고
보니 미사키선배는 올해에 졸업했다. 참 상냥하고 재미있는 선배였는데
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졸업해버리다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다. 일단 나가모리한테 물어보자"

오후 수업이 다 끝난 후 나는 가방을 챙기고 나가모리에게 다가갔다.

'스미이랑 같이 잘만 구슬려 놓으면 같이 가줄지도 모르겠군'

"이봐, 나가모리"

"에? 코우헤이, 무슨 일이야?"

"지금 시간 좀 있어? 오락실 좀 같이 가려는데 갈 생각 있어?"

"나랑 코우헤이랑 루미랑 같이 새로 나왔다는 오락 좀 해보게. 엄청나게
잼있는 게임이래. 스타드래프트란 겜 많이 들어봤지?"

"아, 친구들 사이에서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해본 적은 없어"

확실히 나가모리 이 녀석은 우리들과 달리 게임이랑 별 인연이 없는 녀석
임이 틀림없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조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녀석이니...다요몽성인이라서
이런 외계인들이 나와 설치는 게임은 아주 좋아할 법도 한데.

나와 스미이,루미와 함께 그 게임에 대해 열심히 얘기하면서 게임센터에
같이 가기를 권유했지만 이미 다른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넷이서 같
이 플레이하는 것은 일단 단념해야 했다.

"미안해. 다들 같이 가고 싶어했는데 시간이 안맞어서"

"그럼, 일단 우리들끼리 가서 해볼께. 나중에 시간 생기면 연락줘."

12월 첫날의 날씨는 무척이나 찌푸린 날씨였다. 이상난동 현상인지 아니면
이곳이 원체 다른 지방에 비해 겨울날씨가 따뜻한 곳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눈이 내리는 곳을 보기가 무척 힘들었다. 지난 겨울에는 아예 눈이 오는
것 자체를 본 적이 없었다. 이따끔 비가 내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오늘은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F빛 하늘이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 같았다.

"루미는 겉보기보단 게임 할 줄 아는 게 많네"

"역시 사람들 앞에서는 요조숙녀인 척 하면서 애교떨지만 실상은 칼부림
으로 살인면허도 딴 녀석이잖아. 안그래 루미?"

"내가 언제 숙녀인척 했다고!!"

"그리고 내가 칼 들고 살인하러 다닐 녀자로 보이냣 병신아!!"

"벌써 말투에서 들통이 나잖아. 스미이, 앞으로 이런 여자애 조심하지
않으면 의자에 앉다가 칼침에 찔려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

"뭔소리얏! 코우헤이!"

역시 본래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루미를 데리고 놀리는
재미가 있어서 즐겁긴 하지만 나중에 사귀거나 동반자가 될 남자녀석의
팔자가 사나워질 것을 생각하면 조금 그 녀석이 불쌍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뭐 이런 것도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이라 할 수 있으려나?

"제발 나에 대한 중상모략은 하지 말란 말이야! 어?...끄악!"

"뮤우- "

아니나 다를까. 우리들이 이야기하면서 걷는 사이에 마유가 루미에게
다가와서 머리를 잡아당겼다. 한때 오랫동안 등교를 거부했던 여자애다.
오늘은 늘 같이 학교 다니던 단짝이랑 같이 있지 않는 걸 보니 심심해
하는 거 같았다.

"무슨 일이야, 마유? 혹시 햄버거라도 같이 먹으러가자고?"

마유가 미소를 띄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역시 햄버거를 밝히는
것은 예전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녀석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곤란하고
마침 뱃속이 허전했기 때문에 루미와 스미이한테 의견을 물었다.

"좋아. 마침 배고픈데 새로 생겼다는 가게 한번 가보자"

"아으으, 아퍼....마유 다른건 다 좋은데 제발 뒤에서 내머리 좀 쎄게
잡아당기지 말아줘. 목뼈 부러지는 줄 알았다니까...히잉"

"그래, 나나세 말이 맞어.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을꺼야"

'끄덕끄덕'

"코우헤이. 너가 왠일로 나를 신경쓰는 거지?"

나는 마유한테 다가가서 귀에다가 소근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얘기했다.

"실은 말이야...쟤는 겉보기에는 양갈래로 땋은 저 머리칼이 단순한 머리
  카락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 저게 무시무시한 흉기야. 날마다 밤만
  되면 저 머리카락들을 뽑아서 칼로 바꾼 다음에 맘에 안드는 녀석들은
  죄다 베어버리거든."

"임마,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 좀 하지맛!"

"어이, 다들 진정 좀 하라고.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먹으러가보자"

마유가 새로 생겼다고 하는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녀석들과 간단히 배를
채운 후 나는 마유와 헤어지고 스미이가 말한 게임센터로 갔다.
역시 기대순위 0순위였다는 게임답게 게임센터 안은 <스타 & 드래군스>를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원래 횡스크롤액션게임은 대전격투게임과
리듬액션게임에 밀려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장르였지만 거의 전국
민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드래프트(이하 '스타드')의 외전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 같았다.
일단 사람들이 동전을 잔뜩 걸어놓고 열심히 플레이하는 중이라 뒤에서
다른 구경꾼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우와~ 정말 멋있다. 역시 불리자드는 달라도 확실히 다르군."

"그렇지. 장인정신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을 수 없는 국내회사들이랑 격이
확실히 다른 제작사이니 이런 멋진 겜이 나오는 거야"

한참 동안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구경하면서 녀석들과 신나게 떠들다가
드디어 나와 일행들의 차례가 왔다. 말로만 듣고 구경만 했던 게임을 직접
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나는 동전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

"어라? 이게 왠일지?"

"무슨 일이냐? 코우헤이"

'이런 젠장할...'

주머니에서 먼지밖에 나오질 않았다. 마유를 따라 들어갔던 가게에서 돈을
죄다 써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100원짜리 동전 하나 나오지 않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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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기대되었다.
그것이 단지 겜이라는 걸, 때때로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문득 경의를 표한다.
대단하다! 라고.
이렇게 멋진 작품에.
무려 한시간여 동안 서서 기다리는 것조차도,
그것은 하나의 조그마한 즐거움이었다.
정말로 꼭 하고픈 게임이라 생각했다.
나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앞에서 하던 사람들처럼 멋지게 플레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좌절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백원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몰랐다.
그렇게 절망적인 사실을 나는 몰랐다.
몰랐던 것이다...
"백원은 있어"
그녀는 말했다.
"여기에 있어"
분명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백원이 있는 장소.
... 거기에 지금, 나는 서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