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빛나는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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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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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벙클@hitel.net
kizuato@hitel.net
2월 17일
......
.........
............ 음..
..아침인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눈이 부신다.
"하아아아아암..."
쭈우욱 기지개를 펴며, 크게 하품을 한다.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느낌이 좋다.
마치 휴일날 푹 자고 일어난 듯한,
편안한 아침.
나가모리 녀석.. 아직인가...?
이불을 개고 잠시 빈둥거리다가,
밖을 보았다.
아주 좋은 날씨.
이쯤되면... 빨래를 널어도 되겠는데...?
방안에서 말리던 빨래더미를 가지고 베란다로 나간다.
일단 팡팡 친 다음, 빨래집게로 고정시킨다.
(훗 이 정도면 일등신랑감.. ^^)
뭐.. 잘 마르겠지.
문득 위를 올려다보자
밝게 빛나는 태양이 머리위에 올라와 있...
에..? 머리위...?
다시 한번 본다.
역시 바로 위에 떠 있는 태양.
.......
어..째...서......?
탁탁탁-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거친 동작으로 시계를 들고 본다.
에.. 바늘이 한 개다..
설마 고장난건가...?
자세히 보니 바늘이 좀 뚱뚱하다.
....뭐야. 두개가 겹쳐져있는 거잖아?
쳇 괜히 놀랬....
잠깐.... 그렇다면... 설마......
..12시....?!!!!!!!!!!!!!!!!!!!!!!!!!!!!
서..설마....
나... 지각해버린건가...?
(아니.. 이 시간에 가는 것도 지각으로 쳐주던가.. - -;)
쳇.. 이래뵈도 지각한 적은 없단 말이야.
나가모리 녀석이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이지만...
그나저나 이 녀석.. 왜 여태 안온거지..?
어디 아프기라도 한가...?
어쨌튼 100% 지각.
어쩔까.....
팬티바람으로 설치다가, 대충 옷을 걸친다.
이 시간대라면... 학교에 가는 것은 캔슬이다.
하아.. 그러면 어떡할까나......
뜻하지 않게 넉넉한 시간이 생겼다 - -;
가만히 집에 있기도 심심하고...
오락실이라도 갈까....?
그렇게 생각하고 문을 여는 순간,
바로 앞에 유키코씨의 얼굴이 보였다.
"앗....아...안녕하세요...?"
인사는 했지만...
이런 시간에 집에 박혀 있다니...
뭐라고 말하면 좋지...?
그러나 그녀는 깜짝 놀란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 시간에 집에 있는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아니, 뭔가 이상하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 유키코씨....?"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경계심 강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뭐야... 내가 강도라도 되는 것처럼... 장난인가....?
그러나 뭐라고 할 새도 없이
그녀는 계단쪽으로 힘껏 뛰어내려갔다.
그것은 누가 봐도 겁에 질려 도망치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말도... 안돼..
어째서... 나를 그런식으로 대하는 거지...?
나는 당황한채,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이것.. 꿈이라도 되는 건가....?
그녀를 쫓아 주방으로 들어서자,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며 서있는 유키코씨가 보였다.
나를... 겁내고 있다....?
"유키코씨... 나예요.. 유키라구요. 모리카와 유키!!!!!!!!!"
나의 말에 그녀는 굳은 얼굴로 나를 응시한다.
무언가를 생각하려는 듯, 약간 얼굴을 찡그리는 그녀.
그것은 잘 기억나지 않을 때 짓는 그녀 특유의 표정이다.
그녀의 얼굴이 복잡해지고,
나 역시 답답해진다.
어째서..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이윽고 그녀의 표정이 풀린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기억났다기엔,
너무나 희미한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분명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 겁에 질린 눈초리....
어째서.... 날 잊어버린 거지...?
물건도 아니고, 매일 같이 살았던 가족인데...
나를 괴롭혔던... 두려워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잊혀지고 있는 것인가..
이 곳에서...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그런... 것인가.....
나는 그대로 집에서 뛰쳐나온다.
...이럴수는 없어.
찾아야 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확실히
기억하는 사람을... 찾아야만 해....
지겨울만치 익숙해진 학교앞...
역시... 교복 쪽이 나았을까....
시계는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상관 없지.. 지금 그런 것은....
어떤 영문인지 알아야 해...
나 자신의 존재를 찾아야만 돼..
결심하고, 학교안으로 들어간다.
나를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쉬는 시간이 끝나버린 듯, 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없으니 사복차림으로 돌아다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나가모리를 찾는 것.
나에게 있어 유키코씨 같은, 아니 그보다 더 가까운
신발 같은 존재.
그녀를 만나 확인받고 싶다.
내가 모리카와 유키라는 것을...
한마디면 된다.
나를 보고 유키 라고 불러주면..
그것만으로, 나는 내가 아직 이 세계에 속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
다시 한번 시계를 본다.
역시 사복차림으로 학교를 돌아다니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방법이 없으니까..
나는 현관을 지나 복도로 향했다.
조용하다.
너무도 한적하다
빈 복도를 걸으며, 형체없이 이 곳을
통과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내 발자국 소리마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변화된 듯한 바깥의 모습.
그리고 계단이 보인다.
매일 아침, 나가모리와 뛰어다니던 곳.
탁탁 소리를 내며 한계단씩 올라간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심장이 불안하게 뛰고 있다.
2층복도를 바라본다.
2학년 교실이 늘어서 있는 통로.
가까운 곳에 나가모리가 있다.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그녀가....
같은 곳에 계속 서 있는 것도
언제 누구에게 걸릴지 모르는 일이라서..
나는 인적이 없을듯한 3층으로 올라간다.
3층 역시 사람이 없다.
언제 교실에서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
걸리는건 곤란하지만...
긴장한 채, 시간이 빨리 흘러가 버리기를 바라고 있다.
"... 어이 너. 뭐하는거야 ?"
갑자기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히 나를 부르고 있다..
낯익은 음성....
"학생도 아니면서 왜 들어온거지...?"
얼굴도 알고 있다.
맨날 마주 보던 저 모습. 수염선생이다.
그러나....
"이 학교 학생인가...?"
나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날라리를 뜯어보는 듯한 모습으로... - -;
"하여튼 조사할게 있으니까 같이.."
이런데서 잡힐 수는 없다.
뒤로 돌아, 복도를 내달린다.
수염의 말소리를 무시하고는 마구 달린다.
.......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수염에게는 벗어날수 있었다.
저 곳으로 가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모퉁이를 통과하는 순간,
"으앗~!"
복도에서 튀어나온 (사실은 내 쪽이 튀어나온거지만 --;)
학생과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뻔 한다.
"우아앗~"
순간적으로 뒤쪽으로 물러선다.
간신히 박치기를 피할수 있게 되었다..휴... - -;
역시 몇번이나 이런 짓을 하면 익숙해 지는 것이군....
"... 미안. 급해서 ..."
"제..제 쪽이 더 죄송해요"
상대가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알고 있는 얼굴이다.
"나가모리 ...."
"...... ??"
이름을 불린 나가모리가 내 쪽을 쳐다본다.
".... 에..?"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선.
"혹시 ... 나 모르겠어 ?"
"아..저.. 죄송합니다.."
당황한 얼굴로 사과하고 있다.
"저... 건망증이 심한 편이라서..저.."
손가락을 깨물며 열심히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아는 남자애에 대해서...
"고..곧 기억 날 테니까..."
"... 아냐 됐어 ...."
"... 아.. 하지만 .."
"생각해보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
"하 ..하지만 당신은 제 이름을 ..."
"나가모리 미즈카는 유명한 애니까"
"... 에? ... 에 ?"
"갈게.."
나는 손을 흔들며 멍하게 있는 나가모리를 둔 채
그곳에서 나왔다.
무척 괴로웠다...
......
정원에 우두커니 앉는다.
수업이 끝난 벨소리가 울리고,
그것에 맞쳐 날이 저문다.
교정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주변이 석양으로 붉게 물든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이 곳을 떠돌고 있다.
이미 끝나 버린 관계인데... 나는 왜 이 곳에 있는건가....?
돌아가야 돼...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리고... 유키코씨를 만나자..
아직... 그 사람에게는 완전히 잊혀진 것 같지 않으니까..
이제.. 그 사람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아 ...
발이 멈춘다.
붉은 빛이 드리워진 창문.
사각의 붉은 그림자.
"오늘도... 노을인가.. 내일은 좋겠군.."
무의식적일까...
발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 곳으로..
그 사람과 마주쳤던.. 그 곳에....
잘 쓰지 않는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출입금지라고 되어있는 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풀고, 차가워진 철의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문을 연다.
철컥.
"............"
문을 열자,
노을이 붉게 물든 바닥위에
난간의 그림자가 복잡한 형태를 빚어낸다.
세계와는 동떨어진 듯한 그곳에
한발한발, 걸음을 내딛는다.
노을의 빛이 내게도 드리워지고,
금새라도 닿을수 있는 위치에
노을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진채,
난간에 기대어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선배....."
나는 두려운 기분이 되어 그녀를 부른다.
만약 선배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나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사라져도 상관없는 그런 미미한 존재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사키선배"
휘이이이이잉.
겨울의 잔재를 느낄 수 있는 쌀쌀한 바람이,
난간을 지나쳐 불어온다.
미사키 선배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꼭 누른채,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
잠깐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당황한 듯 묻는다.
"...누구세요...?"
이것이 현실....
"........."
말이 .... 나오지 않는다.
"아..저... 어디선가.. 만났었나요..?"
내 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버린다.
소중했던 나의 일상이, 그대로 사라진다.
마치 꿈처럼, 그렇게 허황된 공간속에 살았던 것처럼,
현실을 깨닫고.. 이 세계에서 멀어져간다.
...느껴진다.
나는.. 선배를 아주 좋아했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을...
지금에서야.. 인정한다......
"장난~ ^^"
".......에?"
"미안해, 유키군."
선배의 입에서 따스함이 흘러나온다.
나의 이름이.. 정확하게 불리워졌다.
"......."
머뭇거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변함없이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선배.
"선.....배......?"
"응.. ^^;"
미안한 듯 웃으며 끄덕끄덕.
"어째 .....서 .....?"
혼란스럽다.
단지 멍하니, 선배를 바라본다.
"있잖아~ ^^"
나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는 선배.
"유키군, 저번에 나랑 부딪혀 놓고는
계속 모른체했었지?
나.. 그때 정말 놀랐었다고.."
"..........."
"그러니까 지금은 그 벌이야 ^^"
".........."
"놀란거야...?
"............."
"유키군...?"
"..어..어째서!!"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선배를 꼭 안고 있었다.
"이..이러지마 유키군..
놔주지 않으면.. 나 소리지를거야..."
"..........."
무의식이다....
이유도 알수 없는 채 마냥 그녀를 안고 있다.
"유키군.. 나.. 부끄럽단 말이야...."
당황한 음성의 선배
"놓아줘.. 응..? 유키군..."
"............"
.............
"유키.......군...?"
"..........."
"...... 저 .."
"..........."
"......혹시....혹시.. 유키군.. 우는거야...?"
"..........."
".... 미안해 유키군.."
"..... 왜 사과하는거야.."
"잘은 모르지만... 내가 잘못한 것 같으니까..."
틀려......
"그러니까...."
선배가 나쁜게 아니야...
"유키군.. 나 싫어진 것 아니지...?"
나쁜건.....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릴까...
나.. 상처 입혀 버렸네.... 용서..해주지 않겠어...?"
"............ 잠시만... 잠시만 이대로 있어줘"
바로 곁에 있는,
좋아하는 사람의 살아있는 온기.
"...정말... 잠시만이야..."
귓볼을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는 선배.
나는 울고 있었다.
미사키 선배안에 내 존재가 있다는 것에.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존재를 기억해 주었다는 것에.
그것이 ... 단지 기뻐서 ...
2월 24일
............
의미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나의 존재...
다른 세계에서 내 존재가 커질수록,
이 세계에서 나의 존재는 사라져 간다.
단순히 이사를 간 것처럼.
아주 간단하지만...
도망치는 것은 이미 늦어버린 그런 것.
"..........."
가만히 내 손을 본다.
익숙해진 방의 풍경과 내 모습.
그 당연함도, 머지 않아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때....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 1층으로 간다.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집을 나온다.
소중한... 지키고 싶은 하나뿐인 존재..
그녀를 만나기 위해....
마지막까지 그녀와의 인연을 놓고 싶지 않으니까.....
<학교>
"...야~ 선배"
"아. 유키군"
하교하는 학생들과 섞여교문을 나온 선배가
즐거운 듯이 내 쪽으로 걸어온다.
"안녕. 유키군"
"응"
"최근에 여기서 자주 보네.. ^^"
"응.. 하교시간이 비슷한 편이니까.."
사복 차림의 내가 하교길일리가 없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선배가 그것을 알리가 없다..
"같이 갈래?"
"데려다 주는거지? ^^"
"응"
거리로 쳐서 50미터.
그 거리를 한심할 정도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나는 곁에 있는 선배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아앗.."
"아..왜...?"
생각보다 많이 놀란 반응..
엉겁결에 손을 놓아버린다.
"방금....누가 나를 끌고가려고 했어...."
"아니, 그런게 아니고 그냥 잡으려고 한건데.. -_-;;;"
"에...? 유키군이였어?"
"응" -_-
"갑자기... 왜....?"
당황한듯 붉어진 얼굴로 묻는다.
"아니 ... 그냥 ... 싫다면 안할게.."
"좋아~ 좋아~ 팔짱 끼고 갈까..?"
그런 말을 하고는 살며시 웃으며 손을 내민다.
나는 확실히 팔짱을 낀다.
선배는 부끄러운 것 같으면서도 계속 웃고 있다.
..쪽 팔리긴 하다....
학교 정문이니까.. -_-;;;;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걸어간다.
"....왜그래?"
"뭐가?"
"유키군이 너무 조용하니까"
"그런가.."
"응. 모처럼 같이 가는건데~ 많이 얘기하고 싶어"
"맞아.. 선배 사귀는 사람 있어?"
"뜻밖이네.. 그런 말은...."
"...아.. 곤란한 거였다면 미안..."
"사과하지 않아도 돼, 조금 놀란 것 뿐인걸"
"역시 너무 갑자기 물은건가..?"
"그치만 궁금했던거야..? ^^*"
"응.."
"없어"
"...그래...? ..선배는 상당히 인기있어 보이는데"
"아니야.~"
"그래도 고백받은적은 있지?"
"음.. 그런가..."
"그것봐"
"그치만 딱잘라 거절해버렸어.
좀.. 잔인하지..?"
선배답지 않은 말...
"나랑 사귀게 되면...
나 때문에.. 그 사람도 같이 힘들어질 테니까..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걸....."
"그렇지 않아"
"유키군"
슬픈듯이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세상에는 유키군처럼 좋은 사람만 있는게 아니야"
"............"
순간 마주한 선배의 눈이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힘들거나 불행해지는 건.. 나 혼자로 충분해..
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
".............."
"그러고 보니 1주일 남았네..?"
말을 돌리는 선배.
"졸업식이?"
"응. 빠르지?.."
"지금까지는 졸업식이라고 해도 실감이 안났는데..
올해는 좀 다른걸...?"
선배를 알았기 때문일까나.....
"...유키군도 졸업식에 올거야...?"
"가고 싶어"
"재학생 대표로 몇 명정도는 가능하다고 들었어"
"그런가?"
"아마도.."
"그러면 꼭 갈게"
"정말?"
"아아 ... 선배가 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이니까..."
"첫...걸음..."
바닥에 시선을 던진채 생각에 잠긴다.
"왜그래 ...?"
".. 유키군. 꼭 보러와야해 ^^"
"응. 약속할게"
"안오면 나 화낼거야"
"알았어"
"응 *^^*"
드디어 선배의 집에 도착한다.
(훗 사이의 발전이란..
원래 2마디 정도로 끝나던 하교길이
이렇게 집을 멀리 옮겨놓을수 있다니.. ^^;)
"벌써 왔네...."
(...버..벌써가 아니야 선배.. -_-;;;)
" 그렇군"
"바래다 줘서 고마워"
"응"
"약속 잊으면 싫어"
"응"
"바이바이~ 유키군"
상냥하게 손을 흔드는 선배를 바라본 뒤,
나도 그곳을 떠난다.
3월 2일
삐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 ~~~~~~~!!!!
삐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 ~~~~~~~~~!!!!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든다.
나는 잠결에, 더듬거리며 알람시계의 스위치를 눌렀다.
.........
다시 정적에 휩싸인다.
"........."
고개를 흔들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
유키코씨집의 내 방이였다.
진짜 내방이라고 할 수 있는건.. 얼마전까지였지만...
그녀에게 발견된다면.. 금방 쫓겨나겠지.....
...유키코씨가 출장을 간것은 행운이야..
이렇게 사라질 수는 없지..
달력을 본다.
내일 날짜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미사키 선배의 졸업식.
약속했다..
꼭.. 선배를 보러가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러니까.. 아직은 사라질수 없어...
남은것은 하루...
..그것으로 충분해...
따르르르르르르르릉 ~~~~!
"............."
현관의 전화가 울리고 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아래로 내려간다.
따르르르르르르르릉 ~~~~!
조용한 집에 울려퍼지는 소리.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를 걸 상대 정도는 짐작이 가지만...
"여보세요"
"미사키야 ^^"
(원래 일본의 전화방식은 딱딱합니다.
직역을 하려다가, 우리나라처럼 자연스레
바꿨습니다. 선배야 목소리로 사람을 구분하니
"여보세요" 만 들어도 유키의 목소리를 알겠지요)
밝은 음성이 흘러나온다.
"선배~ 오랜만인데?"
"어제도 했는데?"
"그랬나...?"
"응"
나에게 전화해 줄 사람은.. 선배뿐이지만...
"내일로 다가왔네..^^"
"응. 내일이구나"
"아. 그런데 유키는 오늘 학교 안가?"
"오늘 ... 은 휴일이잖아 ?"
"졸업식에 참석하는 사람은 오늘 학교에 가야 한대.
예행연습이 있다고 들었어"
".... 몰랐었어"
"그렇구나. 모를거라고 생각해서 전화했어"
"고마워. 그럼 지금 가면 되는거지?"
"응. 곧 시작할 테니까 서둘러"
달칵.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예행연습이라.....
알 턱이 없다.
벌써 며칠이나 학교에 간 적이 없으니..
가볼까 .....
오랜만에 선배 얼굴도 구경하고...
나는 교복으로 갈아입고는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
진짜 오랜만이다.. -_-;;;
이 문을 지나가는 것도, 이 교복을 입은 것도.
교문을 지나가니, 눈 앞에 벚꽃이 날린다.
벌써.. 이런 계절이구나...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겠지....
이곳은 벚나무가 없으니까,
어딘가 알수 없는 곳에서 따뜻한 바람을 타고
건너온것이겠지...
교문쪽에서는 핑크빛으로 장식된 간판이
몇몇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확실해 내일은 졸업식.
시원섭섭한 듯한 졸업식의 독특한 공기가
학교안에 가득 채워지는 듯 하다.
<옥상>
"............"
난간에 몸을 기대고 체육관 쪽을 바라본다.
멀리서 상자를 나르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학교에 온것은 좋았지만 낄 자리가 없다.
"... 내일도 맑으면 좋을텐데.."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런 것을 생각했다.
"거기~ 땡땡이 치는 사람~!"
뒤에서 나는 음성.
"아~ 선배."
"안녕. 유키군"
"땡땡이가 아니라구~"
"그러면 뭐하는데?"
"이미지 관리 - -;"
"고생하네? ^^+"
살짝 웃으며, 내 쪽으로 걸어온다.
".... 선배. 졸업이구나.. ..."
"응. 그동안 고마웠어 ^^"
"섭섭해지겠군"
"...언제라도 만날수 있는걸..."
...........
"....어때? 1년 더 다녀보는 것이?"
귀여운 유머였다 - -;
"그럴까...?"
함께 난간에 기대어 중얼거린다.
곧 '농담이야' 라는 식의 말이 나올거라고 생각했지만..
"............"
그러나, 선배의 입에서는 아무말도 나오지 않는다.
바람 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옥상의 난간을 거칠게 흔들고 있다.
"....맞아"
나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낸다.
"졸업식 끝나면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학교식당이 좋아"
"학교라.... - -;"
"마음에 들지 않는거야?"
"모처럼인데 거리도 구경하고
괜찮은 음식점 같은데서 먹는것도.."
"........."
고개를 숙인채 생각에 잠기는 선배.
"미사키선배?"
"으..응?..."
"선배.. 오늘 좀 이상하네..?"
계속 느꼈던 것이다..
"그게..."
잠시 말이 끊기고...
"...... 있지..유키군"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시선은 난간에 고정해둔채로,
"오늘 날씨 좋지..? ^^;;;;;"
"아..응"
"내일도 모레도 좋을까..?"
"... 아마도"
"....그래"
"............"
".....즐거울거야..."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걸까..
(일기예보 담당자라도 된 것처럼.. - -;)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고...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다양한 사람들도..장사꾼들의 목소리도 듣고...
좋아하는 것도 먹고...
좋아하는 옷을 입고..
따뜻한 햇살 아래에 벚꽃의 향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것....
시간을 잊어버린 채, 그렇게 즐겁게...
조금씩 한가해지는 노을의 공기속에서,
즐겁게 하루를 끝내고..
다음 날은.. 또 어딘가에서...
다시.. 그렇게... 즐겁게..."
허공에 고정된 시선.
멍한 듯이 그녀의 말이 흘러나온다.
"다시.. 그렇게.. 즐겁게...."
"그러니까 가자~!"
"............"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다른건 다 들어줄 테니까
어떻게든 즐겁게 만들어줄게.."
"......미안해"
"어째서.....?"
"....무서워.."
..희미한 속삭임.
바람소리에 파묻혀 버릴 듯이, 나약한 음성.
"...어쩐지... 무서워... 다른 세계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이..."
"....그렇지만 선배는...."
장님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던
평소와는 다른, 자신을 잃은듯한 모습.
"늘.. 학교 안에 있었으니까........
이 곳은... 내가 유일하게 빛을 볼수 있는 곳인걸...
나..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언제나 이 학교를 놀이터로 사용했어.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이 곳으로 와서..
매일매일 숨어들와서 놀곤 했었어.
처음엔 선생님에게 들켜서 끌려나가곤 했지만...
그렇지만 매일 오는 내가 불쌍했는지,
선생님들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어.
과자도 받았었지..^^"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듯, 행복한 미소가 된다.
"고등학교 언니오빠들도 같이 놀아주었어.
도시락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너무 즐거워서... 꼭... 나중에 이 학교를 다니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때...."
학생들도 자주 같이 놀아주었다구. 점심시간에 점심을 가지고
와서
주기도 하고 ... 그래서 나도 크면, 반드시 이 학교에 다닐거라고
그렇게 결심했었어. ...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때 ....... "
나를 바라보는 선배의 눈.
어둡고 차가운 눈동자안에 가늘게 드리워진 상냥한 빛.
"..나... 눈을 볼수 없게 되었어"
"..........."
"그때부터.. 내 마음은 풍경을 잃었지.
비출수 있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추억 뿐이었어.
언제나 좋아하던, 익숙했던 이 곳 말이야..."
그리고 그 유일한 장소는 내일로 졸업한다.
선배의 눈에 살짝 이슬이 맺힌다.
슬픈 추억이었다.
언제나 밝고 강해서, 보고있으면 기운이 나곤 했다.
그런 탓에 늘 잊어버렸다.
미사키 선배는 누구보다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슬픔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선배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졸업식 ... 꼭 와줘....^^"
반짝이는 눈물사이로 환한 미소가 드리워진다.
"유키군이 보고있다면..
나 웃으면서 졸업할수 있을 테니까"
"약속할께"
"늦잠자면.. 화 낼거야"
"응. 꼭 보러갈게"
적어도..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기 전에...
소중한 사람의 말을 들어주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니까....
<잘 있어.. 선배>
최후의 말을 웃으며 말할 수 있도록...